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큰 훈장을 달고 치열한 순위싸움과 용호상박이었던 플레이오프를 마무리하며 다음 시즌은 대흥행을 예고했었던 2008년 한국프로야구. 그 해 타율과 최다안타, 출루율, 볼넷 부분의 1위를 기록했던 떠오르는 왼손 교타자가 대범한 발언을 했다. '홈런타자'로 변신하겠다는 선언. 08시즌 겨우 9개의 홈런을 때렸던, 파워보다는 정교한 타격을 무기로 삼았고 홈런이 나오기 힘든 잠실을 홈으로 쓰는 선수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스타일을 바꾸어 성공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상당히 대범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가 성공하지 못하리라 생각했고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2010년 2월. 그가 3할 5푼에 35홈런을 때리겠다고 선언을 해도 믿을 수 있다. 아니 그가 4할을 친다고 해도 믿을 수 있다. 그 드넓은 잠실에서 0.357의 고타율에 23개의 홈런을 때려낸, 끊임없이 진화하는 '기계곰' 김현수이기 때문이다.

원래 오른손잡이였지만 왼손으로 타격을 할수 있도록 우투좌타로 전환하여 좌타자가 되었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타격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그러한 재능으로 그는 국가대표로도 선발되었다. 국가대표이자 정확한 타격능력의 좌타자. 프로의 상위지명을 노릴 만한 재목이었다. 하지만 그는 운이 좋지 못했다. 그해 신인 드래프트는 별들의 잔치라고 해도 무색할 정도로 쟁쟁한 신인들이 즐비했다. 우선 10억 신인 한기주와 각각 5억과 3억의 유원상, 나승현 등이 고졸 신인 빅3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어서 류현진 같은 신인들이 즐비했던 해. 타격에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좌타자지만 외야수에 느린 발을 지녔으며 스카우트들에게 다소 근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다는 김현수는 결국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못하고 두산 베어스에 신고선수로 등록하여 프로에 입문하였다.
여기에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롯데 자이언츠의 스카우터가 김현수가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자 곧바로 김현수 선수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자이언츠의 신고선수로 등록해달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현수가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프로생활을 하고 싶다고 해서 두산의 신고선수로 등록했다는 이야기. 그만큼 그의 재능은 프로구단들이 알고 있었지만 드래프트 운이 없었다.
2006년을 통째로 2군에서 지낸 다음 2007년 0.273의 타율로 가능성을 보였던 김현수는 2008 시즌에 완벽한 괴물로 변신해 있었다. '타격에 재능이 있다.' 수준이 아닌 '타격에 통달했다.'라고 할 만큼 그의 타격능력은 물이 올랐다. 빈틈이 없었으며 그 어떤 투수의 어떤 공이던지 쳐냈다. 그리고 그의 방망이를 유혹하는 유인구에는 절대로 속지 않는 탁월한 선구안을 지녔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2008시즌 타격과 볼넷, 출루율, 최다안타 부분의 타이틀을 독식하였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보여준 활약은 그를 한국 최고의 좌타자로 인식하기에 충분했다.

비록 08시즌 한국시리즈에서의 극도의 부진은 우승에서 멀어지게 했고 그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다시 달렸다. WBC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서도 반드시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 그의 맹활약은 프로무대에서도 고스란히 보여주어 거포로의 변신선언을 완벽하게 이루어냈으며 이제는 김현수를 거르고 김동주와 승부하기에 이르렀다.(물론 그 누구와 상대하던지 점수를 내주기는 매 한가지였다.) 말 그대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끊임없이 안타를 제조해내는 안타제조기, 그것이 바로 김현수였다.
개인적으로 베어스를 좋아하지 않는 필자에게는 페넌트레이스에서 두산을 응원해 본적은 거의 없으며 마찬가지로 김현수가 안타를 치도록 기도한적도 없다. 오히려 김현수가 아웃을 당하면 좋아하고 병살을 치면 환호했다. 하지만 김현수에게 그러한 장면을 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언제나 위기상황에서 등장한 김현수는 나의 바램과는 다르게 언제나 안타를 때려냈으며 공을 담장 밖으로 멀찍히 넘겨버리기도 했다. 단 2년만에 김동주보다 더 무서워진 선수가 김현수가 된 것은 이러한 활약 때문일 것이다.
신고선수라는 프로선수중 제일 밑바닥의 자리에서 리그 최고, 아니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좌타자로 성장한 그를 보면 정말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없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만약 드래프트에 탈락한 충격으로 야구를 그만 두었으면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어이없는 푸대접의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을 하여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를 보며 지금도 수많은 신고선수들은 땀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을 것이며 더 넓게 보면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실패를 맛본 사람들도 그를 보면서 힘을 얻어 다시 시작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언제나 상대팀의 선수로 마주치지만 그의 타격을 보면 순간순간 소름끼치기도 하며 멋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아버지가 장효조를 보면서 느끼던 감상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본다. 아직 프로 4년차의 젊은, 그라운드 안에서는 날카롭고 노련한 나이먹은 불곰을 연상시키지만 그라운드 밖에서는 어리숙한 아기곰을 떠오르게 하는 김현수. 비록 그의 팀을 응원하지는 않지만 10년, 20년간 국가대표 좌타자로, 역대 최고의 좌타자중 한명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사진출처 : 다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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